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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이집트 파라오의 대표적인 24명 무덤과 도굴 결과는?

by 아이템연구소 2023.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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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피라미드와 같이 거대한 구조물로 자신의 무덤을 짓던 파라오들이었지만, 후대 파라오의 도굴, 도굴꾼의 침입 등으로 인해 부장품뿐만 아니라 파라오의 미라까지 훼손되는 상황이 계속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사후세계의 평안을 위해 도굴꾼이 침입하지 못하는 곳에 무덤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를 위해 대도시와는 한참 떨어진 한 계곡에 구멍을 파서 무덤을 건설하기로 합의되었습니다. 

 

무덤을 건설하는 작업자들은 한 마을에 격리시켜 살게 하면서 상당한 보수를 주었으며, 이러한 노력 덕분에  왕가의 계곡에 있는 무덤들은 '비교적 늦게' 도굴당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방지했습니다. 

아래는 왕가의 계곡에 묻힌 파라오들의 무덤 24개입니다.

 

1. 람세스 7세의 무덤은 고대에 이미 도굴당했지만, 1984년에 완전히 발굴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이 다녀가며 낙서를 남겼으며, 중세에는 콥트 교회의 수사들이 은거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2. 람세스 4세의 무덤은 이미 도굴되어 수많은 고대인들이 관광으로 다녀갔던 흔적이 있습니다. 

고대인들이 남긴 낙서를 많이 확인할 수 있으며, 나폴레옹의 부관들도 다녀갔습니다.

 

 


3. 람세스 11세의 무덤은 람세스 11세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미완공 상태로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무덤 내부는 인부들의 작업장, 미완공된 미라 보관 공간, 왕실 부장품 세공 작업장, 콥트 교회 수사들의 은거지로 사용되었으며, 고대인들의 관광지로도 자주 다녀갔습니다.

 


4. 람세스 9세의 무덤은 파라오의 사망으로 무덤이 대충 완성된 상태로 남았습니다.

이미 도굴당한 상태로 부장품이나 보물을 찾을 수 없습니다.

 


5. 람세스 2세의 무덤은 유명한 고대 이집트 최고의 파라오로 큰 규모로 지어졌으나 나일 강의 홍수 때마다 물에 잠기는 위치에 있어 심각하게 손상되었습니다.

도굴꾼들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도굴해 갔으며, 고대에 이미 완전히 도굴되었습니다.

 


6. 메르넵타(람세스 2세의 후계자)의 무덤은 계곡 사면 안으로 160M나 들어가 있으며, 초대형 화강암 석관이 매장실에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굴꾼들의 침입을 피할 수 없었으며 이미 모조리 도굴당한 상태입니다.

 


7. 람세스 5세 / 람세스 6세의 무덤은 원래는 람세스 5세의 무덤으로 만들어졌으나 후임 파라오 람세스 6세에게 빼앗겼습니다.

가장 정교하게 만들어진 무덤으로 평가되며, 도굴꾼에게 탈탈 털린 상태입니다.

 


8. 아멘메세스의 무덤은 존재감이 없던 파라오여서 무덤도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부장품도 도굴꾼에게 약탈당한 상태입니다.

 

9. 람세스 3세의 무덤은 왕가의 계곡 무덤 중에서도 아름다운 편으로 평가되는데, 매장실에 붉은 화강암으로 깎은 파라오의 석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모두 도굴당한 상태입니다.

 

 

10. 세트나크테의 무덤은 흥미로운 역사적인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이 무덤은 원래 여성 파라오 투스레트(또는 투트모세 2세)의 무덤으로 지어졌지만 세트나크테(또는 세트나크티)가 이를 빼앗아 갔습니다.

세트나크테는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투스레트의 기억을 희화시키기 위해 투스레트의 모습을 회반죽으로 발라 지웠고,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흔한 것은 아니며, 파라오들이 종종 자신의 전적을 바꾸거나 경험을 꾸미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이 무덤은 '왕가의 계곡' 무덤 중에서도 큰 규모에 속하며, 그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미 고대에 도굴당한 상태라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도굴로 인해 많은 역사적 가치를 가진 물건들이 손실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무덤들은 고대 이집트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들이었을 것입니다.

 

 

 

 

11. 세티 2세의 무덤은 특이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 무덤은 계곡의 수직 사면을 깎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접근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특이한 형태는 파라오의 무덤으로서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세티 2세의 무덤은 이미 고대에 도굴당한 상태입니다. 

도굴로 인해 많은 부장품과 유물이 손실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무덤의 매장실에는 59개에 달하는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의 낙서가 남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낙서들은 그리스와 로마 문화와 관련된 가치 있는 역사적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방문자들이 이 무덤을 낙서하면서 그들의 방문 기록을 남겼을 것입니다. 

이러한 낙서는 고대 이집트와 이웃 문화 간의 교류와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12. 람세스 1세의 무덤은 파라오 치세 (Theses)의 통치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크게 볼 만한 것이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무덤은 1817년에 이탈리아 고고학자 지오반니 벨조니(Giovanni Belzoni)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크게 볼 만한 가치 있는 유물이나 장식물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도굴로부터 무덤은 영향을 받아 손상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의 도굴꾼들에 대한 개드립을 표현한 링크는 저의 능력 범위를 벗어납니다. 

하지만 도굴은 이러한 역사적인 유물과 유적을 파괴하는 데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는 역사적인 유산의 손실을 야기합니다. 

따라서 고고학자와 역사 연구자들은 이러한 도굴행위를 예방하고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13. 세티 1세의 무덤은 "황소의 무덤"이라는 독특한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무덤은 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긴 무덤 중 하나로, 길이가 137.19 미터에 달하며 내부 장식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특징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무덤은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아서 화가들이 그린 붓질 자국까지 바닥에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보존 유지를 위해 현재는 관광객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무덤도 도굴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1824년에는 영국이 내부의 관을 떼어가고(이것은 런던에서 전시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828년에는 로제타석을 해석한 프랑스의 샹폴레옹이 벽 한쪽의 부조를 그대로 뜯어갔으며, 1845년에는 프로이센 군이 유물들을 약탈해 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굴은 역사적인 유산에 큰 손상을 입히는 일이며, 이것은 고대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파괴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유적지를 보존하고 보호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14. 람세스 10세의 무덤은 특별한 역사적인 상황을 갖고 있습니다.

람세스 10세가 자신의 무덤을 짓기 시작했지만 중간에 공사가 중단되어 무덤은 미완공 상태로 남았습니다.

이 무덤은 실제로 부덤으로 사용된 적이 없으며, 따라서 무덤 내부에서 부장품이나 미라가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무덤도 도굴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는 낙석으로 인해 관광객들의 입장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도굴은 고대 유적과 유물에 상당한 손상을 입힐 수 있는 행위로, 이는 역사와 고고학 연구에 큰 손실을 초래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유적지와 무덤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합니다.

 

 

 

 

15. 하트셉수트와 투트모세 1세의 합장묘는 보기 드문 합장묘로, 독특한 배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무덤은 5개의 통로와 홀이 꾸불꾸불하게 이어져 있으며, 전체 길이는 무려 210미터로 굉장히 큽니다.

1903년에 이 무덤은 거의 암석화된 자갈과 모래로 덮여 있었지만, 이를 치워보니 그 아래에서 일부 관과 화병, 접시, 석판 등의 부장품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장품은 도굴꾼들이 이미 수십 번 방문해서 가져간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합장묘는 독특한 구조와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부장품들로 인해 역사와 고고학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16. 아멘호테프 3세의 무덤은 1799년에 나폴레옹의 학자들에 의해 최초로 공식적으로 발견되었으며, 이후 1900년에 하워드 카터에 의해 재조사되었습니다.

이 무덤은 화려한 벽화들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매우 중요한 아티팩트와 부장품들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이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일부 훼손되었습니다.

무덤이 공식적으로 발견된 때부터 석굴 깊은 곳에 위치한 관과 황금 세공품, 그리고 부장품들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무덤의 소중한 아티팩트와 유물들은 고대에도 도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것은 도굴이 역사적인 유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17. 아이의 무덤은 다른 파라오의 무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은 무덤은 후대에 아이가 기록말살형에 처해진 후에 파헤쳐지고 크게 훼손당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기록말살형에 처해졌더라도, 이 무덤 또한 도굴꾼들에게 도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파라오의 무덤이나 고대의 유적이 도굴과 훼손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아이의 무덤이 작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고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소중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8. 투트모세 3세의 무덤은 입구가 높은 절벽에 만들어져 있어서 비교적 접근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 무덤은 매장실의 천장이 아름다운 푸른색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중앙에는 투트모세 3세의 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무덤은 이미 고대에 도굴당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입구가 높은 절벽에 위치한 무덤은 도굴꾼들에게는 비교적 접근하기 어렵다는 장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파라오 무덤과 마찬가지로 도굴당해 유물과 아티팩트가 상당 부분이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은 다른 파라오의 미라까지 함께 묻힌 합장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도치 않은 합장은 다른 무덤들이 모두 도굴꾼에게 털려가는 상황을 목격한 신관들이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이 아직 도굴당하지 않았고 비교적 원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도굴된 무덤의 파라오 미라를 함께 묻는 결정을 내린 결과입니다.

이 합장묘는 부장품들은 도굴꾼에게 털렸지만, 무덤의 미라들은 더 이상 고생하지 않고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20. 투트모세 1세, 또는 더욱 잘 알려진 이름으로 파라오(Pharaoh) 투트모세 1세는 고대 이집트의 제1왕조에서 히에로그리픽 기록에 등장하는 제2대 파라오입니다. 

그의 시대는 약 기원전 16세기 경으로 추정되며, 그의 무덤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투트모세 1세의 무덤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며, 그의 무덤이 파괴되었거나 숨겨져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은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아 도굴꾼들의 노련한 활동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몇몇 왕들의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거나 아직 찾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무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파괴되거나 지하로 묻힐 수 있으며, 자연재해와 인위적인 손상으로 인해 정보를 얻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투트모세 1세의 무덤이 홍수나 자연재해로 망가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정확한 상황은 역사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으며, 아직까지 그의 무덤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단서와 발견들은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왕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들에게 중요한 정보가 될 것입니다.

 

 

 

21. 투트모세 4세의 무덤이 하워드 카터에 의해 1903년에 발견되었지만 이미 고대에 도굴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워드 카터가 야자수 밧줄을 발견한 것은 흥미로운 발견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도굴꾼들이 무덤에 침입할 때 사용한 장비의 일부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발견은 파라오 무덤의 역사와 고대 도굴 활동에 대한 흥미로운 힌트를 제공합니다.

 

 

 

 

 

 

22. 십타의 무덤은 파라오 십타의 무덤으로, 파라오 십타는 큰 존재감은 없었지만 그의 무덤은 화려하고 보존 상태가 좋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무덤은 옛 모습을 굉장히 잘 보존하고 있어, 횃불 그을음과 인부들의 발자국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고대 도굴꾼들에게 도굴당한 상태이며, 신관들은 파라오의 미라를 보존하기 위해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에 십타의 미라를 합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파라오 무덤의 역사와 고대 도굴 활동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입니다.

 

 

 

 

 

 

23. 호렘헤브의 무덤은 1908년 2월에 에드워드 아이르통에 의해 최초로 공식적으로 발견되었지만 이미 완전히 도굴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이 무덤은 왕가의 계곡 바닥에 위치해 있어서 잦은 홍수와 침수에 시달려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았고, 안치실 중앙에 있는 붉은 화강암 관의 관뚜껑 또한 도굴꾼들에 의해 파괴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많은 고대 무덤들이 도굴되거나 파괴된 역사적인 사실을 보여주며, 그 시대의 무덤에 대한 연구와 보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24. 투탕카멘의 무덤은 자타공인 왕가의 계곡에 위치한 가장 유명한 무덤 중 하나로, 거의 도굴당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어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으로 간주됩니다.

이 무덤은 총 2번의 도굴 흔적이 있으나 귀금속 등 일부 품목 위주로 가져갔고, 다른 무덤들과 비교하면 도굴 정도가 매우 미약하다는 점이 주목적입니다.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한 것은 발굴 현장 일꾼들이 마실 물을 가져오던 소년인 '후세인 압델 라술' 이었습니다. 

그가 가져온 물을 땅에 조그만 구멍을 파면서 가장 윗 계단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곳은 이전에 발굴되지 않았던 곳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람세스 6세의 무덤을 짓던 노동자들이 기거하던 오두막이 있었던 곳으로, 하워드 카터가 발견 현장 책임자로서 이곳을 파내어 역사적인 발견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발견은 고대 이집트 역사와 문화를 더 잘 이해하고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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